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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2편까지는 이론과 구조 중심으로 기획자의 역할을 설명했다면, 이번 3편에서는 실제 기획 현장에서 마주했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그 원리가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다룹니다. 특히 회원 탈퇴 사유 수집 기능을 설계할 때 발생했던 대표와의 판단 차이, 그리고 그 갈등을 설득이 아닌 ‘보완’으로 해결했던 과정은 기획자의 본질적 역할을 매우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또한 많은 주니어가 기획자의 이러한 태도를 왜 ‘노예 마인드’로 오해하는지, 조직 구조를 이해하지 못할 때 왜 이런 해석이 나오게 되는지도 함께 살펴볼 예정입니다. 즉, 이번 편은 기획자의 역할을 가장 현실적인 시각에서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5. 실제 사례: 탈퇴 사유 수집 기능 설계에서 배운 것
과거 회원 탈퇴 사유를 수집하는 기능을 설계했던 경험은 기획자의 역할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입니다. 저는 탈퇴 사유 수집이 실질적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부정적 상황에서 떠나는 사용자가 진지한 피드백을 남길 확률은 낮고, 데이터의 신뢰도 또한 담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경험이 부족했던 대표는 “탈퇴 사유를 알아야 탈퇴를 줄일 수 있다”는 가설을 갖고 있었고, 이 판단에는 경험 기반 통찰보다 단순한 희망이 섞여 있었습니다.
저는 대표의 의견을 꺾는 대신, 그 의도를 보완하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단순 설문이 아니라 탈퇴 시 잃게 되는 리스크를 안내하는 UX로 전환하며 대표의 아이디어를 더 효과적으로 재구성한 것이죠. 이 사례는 기획자가 어떤 방식으로 대표의 생각을 ‘되게 만드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5-1. 탈퇴 사유 수집 기능을 둘러싼 판단 차이
회원 탈퇴 사유를 수집해야 하는지 여부는 서비스 초기나 운영 과정에서 흔히 등장하는 논의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단순한 기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비스 철학과 데이터에 대한 관점, 그리고 사용자 경험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대표와 기획자 사이에서 종종 충돌 지점이 되곤 합니다. 이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당시 저는 오랜 경험을 통해 탈퇴 사유 데이터가 신뢰하기 어렵고, 부정적 감정 상태에서 떠나는 사용자에게서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얻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대표는 “탈퇴 사유를 알아야 탈퇴를 줄일 수 있다”는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가설을 가지고 있었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의 판단 중 누구의 것이 더 ‘맞는가’가 아니라, 판단 기준 자체가 서로 다르게 설정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저 데이터의 질과 현실적 활용 가능성에 집중했지만, 대표는 서비스 개선의 단서를 얻고 싶다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같은 기능을 두고도 서로 다른 시각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기획자가 어떤 접근을 선택하는지가 그 조직의 문화와 기획자의 역량을 가르는 중요한 순간이 됩니다.
5-2. 왜 단순 수집형 설문은 의미가 없는가
탈퇴 사유를 단순히 입력받는 방식을 채택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명확합니다. 탈퇴는 기본적으로 부정적 경험의 결과물이며, 사용자는 가능한 한 빠르게 서비스를 떠나고자 하는 심리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이때 장문의 서술형 사유를 적거나, 세심하게 옵션을 선택해 의미 있는 데이터를 제공할 확률은 매우 낮습니다.
실제 많은 서비스에서 탈퇴 사유 설문은 ‘귀찮음’, ‘그냥’, ‘이용 안 함’ 등 분석 가치가 거의 없는 값들로 채워집니다. 또한 사용자가 적는 사유는 종종 감정적이거나 순간적인 판단이 반영되기 때문에 실제 행동 원인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이런 데이터는 겉보기엔 수집이 되고 있지만, 실제 서비스 개선에 기여하기 어렵고 오히려 잘못된 방향으로 해석되는 리스크도 존재합니다. 기획자가 이 점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음에도 대표가 설문 수집을 원했던 이유는, “어떤 정보든 받으면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기대감이었습니다. 하지만 기획자는 ‘수집된 데이터가 실제로 어떤 가치를 가질 것인가’를 판단해야 하며, 그 판단을 기반으로 기능 설계 자체를 다시 고민해야 합니다. 즉, 단순 설문 방식은 기획자가 보기엔 ‘의미 없는 구조’였던 것입니다.
5-3. 대표의 의도를 존중하면서도 더 나은 방식으로 완성한 과정
이 사례의 핵심은 기획자가 대표의 의견을 그대로 따르거나, 반대로 완전히 거부한 것이 아니라 대표의 의도를 이해한 뒤 더 효과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했다는 점입니다. 대표는 탈퇴 사유를 알고 싶어 했고, 그 배경에는 “탈퇴를 줄이고 싶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목적 자체는 타당하다고 판단했지만, 방법론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단순 설문 수집 대신 탈퇴 UX에서 사용자가 잃게 되는 혜택이나 리스크를 명확히 안내하는 플로우를 설계해, 사용자가 한 번 더 생각하고 돌아볼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구조는 대표의 “탈퇴 원인 파악”이라는 요구를 어느 정도 충족하면서도, 실제 서비스 운영에 더 도움이 되는 형태였고, 동시에 사용자 경험도 보다 자연스러워졌습니다.
이 접근 방식이 중요한 이유는, 기획자가 대표의 요구를 보완하는 역할을 정확히 수행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설득을 시도했다면 갈등이 생겼을 것이고, 그대로 수용했다면 무의미한 기능이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대신 기획자는 대표의 의도를 해석하고, 그 의도가 실제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기획자의 성숙한 역량이자, 조직 내 신뢰를 쌓는 가장 건강한 방식입니다. 결국 이 사례는 기획자의 역할이 ‘대표의 의견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대표의 생각이 실제로 가치 있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임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6. 왜 이 사고방식을 주니어는 ‘노예 마인드’로 오해하는가
경험이 부족한 주니어 기획자는 종종 ‘옳고 그름’ 중심의 사고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래서 대표의 의견을 따르거나 구체화하는 행동을 “그냥 말 잘 듣는 것”, 심지어 “노예 마인드”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생기죠. 하지만 이는 조직에서 권한과 책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아직 몸으로 경험해보지 못해 생기는 오해입니다.
주니어는 자신의 의견이 ‘더 논리적’이라고 느끼면 그게 곧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회사의 결정을 움직이는 힘은 논리의 정합성이 아니라 ‘누가 책임을 지는가’입니다. 기획자가 대표의 방향을 따르는 것은 복종이 아니라 직무 역할에 대한 정확한 이해입니다. 실제로 진짜 노예 마인드는 대표의 요구를 그대로 옮겨 적는 사람이지, 대표의 의도를 개선하는 기획자가 아닙니다.
6-1. 왜 주니어는 기획자의 역할을 ‘노예적’이라고 오해하는가
경험이 부족한 주니어 기획자가 흔히 가지는 오해 중 하나는, 대표의 방향성을 존중하고 그 의도를 기반으로 구조를 설계하는 기획자의 태도를 ‘주체성이 없는 모습’ 또는 ‘노예 마인드’로 치부하는 경우입니다. 이 현상은 주니어가 가진 사고 구조와 기획자 역할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비롯됩니다.

주니어는 대개 ‘정답 중심 사고’를 합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데이터, UX 기준, 기능적 타당성이 더 합리적으로 보이면, 그게 곧 옳고, 대표의 판단이 다르면 그건 틀렸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이때 대표의 의견을 바꾸지 않고 따르는 기획자를 보면 “비합리적인 것을 따라간다”는 피상적 판단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는 조직에서의 권한·책임 구조를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오해일 뿐입니다.
대표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복종이 아니라, 그 판단의 책임과 리스크를 대표가 모두 지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구조적 결정입니다. 주니어가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기획자의 성숙한 역할을 ‘수동성’으로 오해하게 되고, 기획자가 대표의 방향성을 보완하는 행동을 ‘자기 의견을 버리는 것’으로 잘못 해석하게 됩니다. 결국 이 오해는 경험 부족에서 오는 시야의 좁음이지, 기획자의 역할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6-2. 조직 구조를 모르면 ‘권한과 역할’을 혼동하게 된다
기획자의 역할은 회사에서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결정된 방향을 실행 가능한 구조로 만드는 전문가입니다. 하지만 이 역할 구분은 조직 경험이 쌓여야 비로소 명확히 이해됩니다. 주니어 단계에서는 “기획자가 회사의 방향성을 이끄는 사람”이라는 과대 기대를 갖기 쉽고, 서비스 개선의 주도권을 자신이 가져야 한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러한 혼동이 생기면 대표의 판단은 기획자의 논리에 ‘져야 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기획자가 대표의 의견을 그대로 구조화할 때 이를 마치 ‘복종’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하지만 실제로 조직은 옳은 판단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사람의 의견으로 움직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기획자가 아닌 대표에게 있습니다.

조직 구조를 모르면, 기획자는 대표가 판단을 바꾸려 하지 않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는 기획자가 대표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대표의 의사결정 맥락과 책임 구조를 고려해 더 효과적인 실행 방식으로 보완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주니어는 기획자의 성숙한 협업 태도를 ‘노예적 태도’로 혼동하는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6-3. 진짜 노예 마인드는 ‘기계적 수용’이지, ‘보완적 설계’가 아니다
주니어 기획자가 흔히 주장하는 “노예 마인드”라는 표현은 사실 매우 잘못된 방향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정작 진짜 노예적 태도는 대표의 의견을 아무 맥락 없이 그대로 기획서에 옮겨 적는 것, 즉 ‘기계적 수용’을 말합니다. 대표의 의도나 사용자 경험, 서비스 구조를 고민하지 않고 그대로 따르는 행동이야말로, 기획자의 전문성을 포기한 채 단순 전달자로 머무르는 방식입니다.

반대로, 앞선 사례에서 보여준 접근 방식은 대표의 의도를 이해한 뒤 그 의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구조를 재설계하는 행위였습니다. 이는 기획자의 핵심 역량인 구조화·번역·보완 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오히려 성숙한 기획자의 자세를 보여주는 방식이지 절대 노예적 태도라 할 수 없습니다.
진짜 전문가는 대표가 제시한 방향이 완벽하길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 방향이 현실에서 작동하도록 정교하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역할임을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대표의 의견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과 대표의 의견을 ‘더 나은 구조로 보완하는 사람’을 동일하게 보는 것은 기획 직무의 본질을 완전히 오해한 해석입니다. 즉, 성숙한 기획자의 행동은 복종이 아니라 조율과 해석과 구조화의 기술입니다. “노예 마인드”라는 표현은 오히려 그 본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해당합니다.
왜 기획자는 대표를 설득하려 해선 안 되는가? (4)편에서 계속...
온라인 공간에서 야메군이란 닉네임으로 활동 중인 25년 차 서비스 기획자. 네이버 웹/모바일 기획자 커뮤니티 웹(WWW)을 만드는 사람들에서 운영진으로 활동했으며, 딴지일보를 시작으로 아이러브스쿨, 메가엔터프라이즈, 짱공유닷컴, YES24를 거쳐 IT 원천기술 연구소 Valhalla Lab에서 Pattern recognition과 Machine learning 기반의 Natural language processing 기술의 상업적 이용방법에 대한 연구. 최근 스타트업계로 이직, 반려동물과 온라인 피트니스 분야를 경험했고 자율주행 도메인을 거쳐 현재 SaaS 기반 Monitoring 도메인에서 유일한 기획자로 재직 중. 2016년 7월, 웹/모바일 기획자의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서적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웹 기획”(정재용, 최준호, 조영수 공저) 출간. 2008년부터 약 15년간 서비스기획자의 성장을 위한 온/오프 강의를 통해 후배 기획자를 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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