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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남기는 콘텐츠의 아젠더가 참으로 우울하네요. 그간 버티컬 커머스의 대명사로 30~40대 남성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던 신박하고 참신한 아이템을 판매하던 펀샵(funshop.co.kr) 서비스가 2025년 2월 28일자로 20여년 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한다는 공지사항이 떴습니다. 사실 전 이런 일이 있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고객센터의 업무시간 축소, 주요 프로모션 스토어의 재정비를 명목으로한 종료 소식을 들었음에도 말이죠..
 

펀샵의 서비스 종료 공지. 개인적으론 대통령 탄핵사건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재작년 즈음부터 본격화된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 커머스의 대약진으로 인해 해외 직구의 문턱이 몇 단계 낮아진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 더불어 킥스타터, 인디고고와 같은 해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구매가 점차 늘어나며 가격적인 측면이나 독특하고 아이디얼한 제품을 판매해오던 펀샵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점차 희석이 되던 상황. 이러한 상황을 타계해보고자 상품 카테고리의 다변화 그리고 고객층의 다변화 전략으로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하는 노력을 이어갔으나 결국 이런 결과가 초래되었네요.
 
펀샵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긴 시간을 펀샵과 함께 해왔던 저로썬 과연 그 전략이 바람직 했을까에 의문점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펀샵은 아트웍스코리아라는 회사가 2002년부터 사업을 시작했고 실질적인 B2C 커머스 운영은 2003년에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 펀샵은 대표가 직접 큰 캐리어(당시 그 캐리어는 공교롭게도 내가 가지고 있다.)를 들고 해외를 다니며 신기하고 독특한 물건을 리서치하고 이 중에 괜찮은 아이템을 손수 수입해서 판매 했었습니다. 그 덕택에 상품 하나하나에서 대표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죠. 지금처럼 MD가 책상머리에 앉아 인터넷으로 웹 서핑하고 셀러 또는 벤더들에게 링크 날리고 이 제품 소싱해서 펀샵에 입점하라고 커뮤니케이션하던 때와는 많이 다른 펀샵만의 철학이 있었습니다. 
 

첫 구매일이 무려 2003년 10월.. 주문번호가 234번이다.

 
그러던 중 2017년, 버티컬 커머스 영역을 강화하겠다는 목적으로 CJ오쇼핑이 펀샵을 인수하게 되었고 사명도 아트웍스 코리아에서 브랜드웍스 코리아로 변경되었으며 그때부터 펀샵의 모습이 조금씩 변질되었습니다. 뭔가 친근감이 배제된 고객과의 소통, 뭔가 유니버셜해진 상품군, 펀샵 만의 고유한 콘텐츠의 재미와 해학 저하 등 펀샵이 가진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희석되었죠.
 
이와 같은 과정 속에 유통 대기업의 인프라에 힘입어 외형 상의 사이즈는 급속하게 성장했으나 영업이익의 적자 규모 역시 비례하는 상황. 2023년 매출이 1,074억에 달하고 성장율도 무려 220%에 달했으나 2023년 들어 영업이익의 적자는 전년도 대비 무려 -727.64%에 달하고 당기순이익 역시 -241.49%에 이르렀습니다. 2023년 데이터로 미루어볼 때 2024년엔 그 폭이 더 증가했으면 증가했지 줄지는 않았을 것으로 봅니다.

 

매출액의 외형적 성장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이러한 상황에서 2018년, CJ 오쇼핑과 CJ E&M의 합병으로 CJ E&M의 자회사가 된 펀샵(브랜드웍스 코리아)은 어른들의 장난감 가게라는 슬로건 아래 모인 30~40대 남성 타겟의 컨셉이 일반 커머스와 다를 바 없는 현재의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기업의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전략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이를 위해 서비스의 컨셉과 방향성 등에 변화를 주는 건 기업 입장에서 당연히 해볼 수 있는 일입니다. 실제로도 그러한 사례는 흔히 찾아볼 수 있고요. 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습니다. 펀샵과 같이 그 포지션과 아이덴티티가 명확한 서비스라면 유니버셜한 컨셉을 수용해서 고객층을 넓혀가기 보단 오히려 깊이를 유지하고 충성고객과의 스킨쉽 강화에 포커스를 두는 게 맞다고 보여집니다. 이를 위해 광고/홍보/마케팅에 집중하기보다는 커뮤니티와 컨셉 유지에 힘을 쏟음으로써 단단한 결속력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고요. 
 
이미 펀샵은 사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고, 펀샵에서 일하던 직원들 역시 퇴사를 했거나 퇴사가 예정되었을거라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펀샵이 없어지므로써 펀샵과 같은 유니크한 컨셉을 가진 커머스는 이제 찾아보기 어려울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매일 같이 방문해서 신상품 정보를 확인하고 펀테나에 들어가 다른 고객들과 소통하던 저의 일상도 이젠 다른 무언가로 채워야 합니다.(사업 종료일에 맞춰 펀테나의 커뮤니티 게시판을 닫아버렸습니다.) 앞에서 밝혔 듯, 저와 20여년을 함께했던 펀샵이 사라진다고 하니 마음 한 구석이 뻥 뚫린 듯한 공허함이 한동안은 이어질 듯 하네요. 작은 바람이지만 펀샵의 역전에 용사들이 다시 뭉쳐 과거의 그 즐거움을 복구하길 희망합니다. 그동안 고마웠어. 잘 가.. 하지만 다시 돌아오길 바래.. 안녕.. END.
 
PS.
그런데 CJ E&M.. 사업 종료와 별개로 기존 고객들에 대한 예의가 없네요. 사업 종료한다. 이 한 마디면 끝나는걸까요? 고객들과 석별의 정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아까운 걸까요? 한 두 해 서비스 하다가 닫는 것도 아니고 무려 20여년이 이어진 서비스 입니다. 저는 CJ E&M이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서 고객들에게 예의를 갖췄으면 합니다. 사실 들은 이야기도 있고 하고 싶은 말도 있지만 참아야겠죠..

 


온라인 공간에서 야메군이란 닉네임으로 활동 중인 24년차 서비스 기획자. 네이버 웹/모바일 기획자 커뮤니티 웹(WWW)를 만드는 사람들에서 운영진으로 활동했으며, 딴지일보를 시작으로 아이러브스쿨, 메가엔터프라이즈, 짱공유닷컴, YES24를 거쳐 IT 원천기술 연구소 Valhalla Lab에서 Pattern recognition과 Machine learning 기반의 Natural language processing 기술의 상업적 이용방법에 대한 연구. 최근 스타트업계로 이직, 반려동물과 온라인 피트니스 분야를 경험했고 자율주행 도메인을 거쳐 현재 스마트팜 플랫폼에서 기획자로 재직 중. 2016년 7월, 웹/모바일 기획자의 업무능력 향상을 위한 서적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웹 기획”(정재용, 최준호, 조영수 공저) 출간. 2008년부터 약 16년간 서비스기획자의 성장을 위한 온/오프 강의를 통해 후배 기획자를 양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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